바람의 속삭임에 따라
옷깃을 여미고
길을 나선다
핏줄에서부터 타오르는 증오도
허구 속에 묻어둔 채
총구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가
처음으로 자신의 궤멸을 맛보는 것처럼
우리는
인간적 양심과 자존심 때문에
껄떡 숨을 몰아쉬며 떠나는 것이다
무한의 길을 가다
해 질 녘이 오면
신의 제단 위로 몽환적 하늘이 열리고
핏빛처럼 붉은 노을이 탄다
무의식 속에 가는 세월은
인간을 성숙하게 하지만
삶의 언저리에서
절대적 진실 속에서
갑자기 세상을 등진다는 건
아무것도 가져갈 시간도 없이
수다쟁이의 잊힌 언어와도 같이
비밀스럽게 먼 길을 떠난다는 건
지닐 수 없는 영혼의 무게로부터
도망자가 되는 것
파수꾼의 기다림도 외면한 채
자유의 날개를 달고
우리는 비로소 천사가 된다
그즈음, 문득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에
밤이 적막하게 내리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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